[마켓파워]새로운길 모색하는 한국조선해양, 향후 거취는…정기선 경영능력 시험대

기사승인 2022. 05. 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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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인수 불발에 시장 외면
아산사회복지재단도 보유지분 매각
주가 1년 만에 반토막 8만원대로
조선업 안정·신사업 잡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세부 계획 제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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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선해양이 시장 달래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해 설립된 당초 목적이 사실상 물건너 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주가는 1년새 반토막났다. 지난해 9월 자회사인 현대중공업 상장으로 한국조선해양 주가가 디스카운트된 바 있다. 특수관계사인 아산사회복지재단까지 한국조선해양 지분 매각에 나섰다. 이에 한국조선해양은 신사업 진출과 배당, 자사주 매입 등 주주친화정책을 통해 시장을 안정화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시장 시선은 여전히 불안하다. 큰 그림만 제시했을뿐 막상 들여다보면 구체적인 시행 계획이 없어서다. 한국조선해양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발표한 친환경·디지털 선박기술 고도화는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발표한 미래 핵심사업과 유사하다. 한국조선해양이 빛을 보려면 세계 2위 대우조선해양을 품에 안아야 했지만, 인수 불발로 설립 목적이 상당 부분 퇴색됐고 역할도 애매해졌다. 조선업에 관심갖는 투자자 입장에선 그룹 기둥인 현대중공업과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 지주사 HD현대 가운데 한국조선해양을 선택해야 할 메리트가 없어진 셈이다.

올해 HD현대와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자리에 새로 오른 오너 3세 정기선 사장의 판단만 남았다. 업계에선 시장 관심과 평가를 제대로 받으려면 심도있는 고민을 통해 더 다양하고 명확한 방안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대가(家) 정몽준 이사장이 이끄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은 올해 3월 3일부터 이달 17일까지 29거래일간 지주회사 HD현대 주식 50만3789주를 약 285억원에 매입했다.

재단은 HD현대 주식 매입 일주일 전 한국조선해양 보유 지분을 소량만 남기고 대부분 매각했다. 지난 2월 주식 99만주를 858억원에 시간외매량매매 방식으로 팔았다. 재단의 한국조선해양 지분은 작년 말 2.38%에서 0.98%로 줄었고, HD현대 지분은 동기간 1.92%에서 2.56%으로 늘었다. 재단 관계자는 “자금 운용상 한국조선해양 지분을 팔고 HD현대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며 “연말까지 HD현대 주식을 분할 매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단이 20여 년간 보유하던 지분을 매각한 것을 두고 한국조선해양의 투자 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장 관계자는 “시장성이 없어 보유하는 것보다 매각하는 게 이득이란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수익을 내지 못하면 손을 떼는 게 투자의 기본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재단조차 한국조선해양을 투자가치가 없다고 보고 외면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한국조선해양은 2019년 6월 조선사 현대중공업을 물적분할해 설립됐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이 현대중공업을 두 개로 나누는 기업분할이었다. 원래 HD현대 아래 현대중공업이 있고, 현대중공업을 통해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을 거느리는 구조였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주식(56%)을 단순하게 사들이는 게 아닌 현물출자 방식을 택하면서 복잡해졌다. 조선합작법인 한국조선해양을 만들어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취득하고, 그 대가로 보통주(약 7%)와 약 1조2500억원 규모 전환상환우선주를 발행해 산은에 지급하기로 한 것. 이를 통해 한국조선해양은 대우조선해양의 1대 주주, 산은은 2대 주주가 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인수가 불발되면서 모양이 우습게 됐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초대형 조선사로 거듭나면 중간지주사 지분 가치가 높아질 것이란 이유로 주주들을 달랬지만 그 명분이 사라졌다. 한국조선해양 출범 당시 비상장사로 남겨놨던 현대중공업까지 지난해 돌연 상장시켰다. 한국조선해양 출범 직전 14만원대였던 주가는 분할 설립 계획이 발표된 직후 12만원대로 떨어졌고 현재 8만원대에서 고전하고 있다.

그룹 내 위치가 모호해지자 한국조선해양은 사업지주 역할을 강화하고, 고배당 정책과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 주주환원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가삼현 부회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친환경·디지털 선박기술을 고도화하고 올해 하반기 완공될 글로벌 R&D센터에서 새로운 미래를 이끌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조선해양의 비전은 지난해 현대중공업이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발표한 미래사업 비전과 동일하다. 현대중공업이 해도 되는 사업들을 한국조선해양이 대신하겠다는 것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한국조선해양을 만든 목적 자체가 대우조선해양 인수였으나 무산되면서 보유현금을 어떤 식으로 유용할지에 대해 시장과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며 “회사는 독자사업을 통해 사업지주로 전환하겠다는 비전을 내놨지만 큰 방향만 제시했을 뿐 실제로 시행했거나 세부 계획을 발표하지 않아 주가 부양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R&D) 전담 역할을 맡겠다는 경영 비전도 내놨지만, 이마저도 HD현대와 공동 관리 체제로 가면서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기선 사장이 직접 챙긴다는 아비커스가 대표 사례다. 아비커스는 선박 자율 운항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조선 사업을 맡고 있지만, 한국조선해양이 아닌 HD현대(100%) 소속이다. HD현대 관계자는 “HD현대는 투자형 지주사로서 자율운항 분야가 단순히 조선사업 분야로 보기 보다는 신수종 사업이라고 보고 그룹 내 1호 스타트업 회사로 아비커스를 설립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조선해양이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정기선 사장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너 경영자로서 정확한 평가와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리더십과 추진력을 증명할 첫 시험대에 선 셈이다. 현재 한국조선해양 내부적으로도 구체적인 비전 수행 계획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밑그림만 그려놨고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고 있는 단계”라며 “앞으로 투자자 설명회를 통해 계속 말씀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배당에 대해서도 시기나 규모 등 세부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기술 중심 엔지니어링 회사가 되겠다는 비전은 출범 당시 발표했던 내용으로, 이미 주가에 반영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정기선 사장은 현대중공업뿐만 아니라 한국조선해양 가치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골치 아픈 일을 떠안게 됐다”며 “중간지주사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제도적 장치나 세부 시행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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